산불 피해지 복원하려면…식물학자 허태임 “건강한 숲 되살리는 게 유일한 답”
페이지 정보
작성자 행복이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5-30 11:16본문
지난 13일 경북 봉화에 있는 백두대간수목원엔 튤립과 철쭉이 만발했다. 이 수목원은 다채로운 꽃이 흐드러진 정원이자, 스키장을 만든다며 깎여나간 가리왕산의 분비나무와 석회암 채굴로 터전을 잃어가던 댕강나무가 자라는 대피소다. 수목원들은 으레 기후위기와 개발 등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수목을 보전하는 기능을 담당하지만 백두대간수목원은 그중에도 특별하다. 고산지대를 따라 자리잡은 북방계 식물과 따뜻한 기후를 선호하는 남방계 식물 서식지가 만나는 지점에 세워진 백두대간수목원은 한반도에 분포하는 식물을 보전하고 복원하는 기능이 특화됐다. 전 세계 단 두 곳뿐인 시드볼트(재난을 대비한 식물 종자 보관 시설)도 이곳에 있다.
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은 사라져가는 식물을 연구하고 다친 숲을 되살리는 데 힘쓴다.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긴 영남지역 동시다발 산불 피해지에도 이곳의 손길이 뻗쳤다. 복원실 복원지원팀장이자 영남 산불 피해지 조사팀 일원인 식물학자 허태임 연구원(39)을 13일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났다.
허 연구원은 지난 3월 발생한 영남 산불 피해지 조사를 마치고 수목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과 모니터링에도 참여했다. 산불 피해지 복원 방법에 관해 묻자 그는 답했다. “어렵다. 아직은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가야 한다.”
유엔(UN)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전 세계 생태계를 복원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10개년 계획을 2019년 선언했다. 생태계 흐름을 파괴에서 복원으로 역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후 국내에서도 산림자원법 등 관련 제도가 정비됐다.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은 그 제도들이 적용되는 첫 복원 사례다.
산림청은 2023년 6월부터 울진 산불피해지 산림생태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일부 지역은 완전히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자연 그대로의 회복을 기다린다. 어떤 곳은 스스로 돋아난 맹아를 보살피며 관리한다. 나머지는 직접 묘목을 옮겨다 심어 기른다. 허 연구원은 모니터링 2년 차인 지금엔 아직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단언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정답을 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만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곳에 원래 살던 식물들의 유전자원으로 피해 지역을 되살리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허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결국 기준이 되는 건 기존에 있던 건강한 숲들”이라며 “현장 기반 과학이 중요하다는 걸 더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산불 전 그 지역 식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재난 이후 생태계를 복원할 때 참고할 원형이 없다는 의미다.
식물을 되살리는 일에는 인간의 시간보다 더 먼 미래를 상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허 연구원은 “여러 연구들이 산불 뒤 숲을 푸르게 만드는 데 짧으면 30년, 완전한 회복까지 길게는 100년까지 걸린다고 말한다”며 “복원은 100년 후를 내다봐야 하는데 그보다 짧게 사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예측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오만 가지 변수가 존재하는 자연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면서 느끼는 건, 더 겸손해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희귀식물 피해를 조사하러 가는 길에서 불탄 인가나 죽은 강아지 사체, 전소된 차량 등을 본다. 차에 타고 있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러고 나면 현장에서는 식물을 이런 방식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잘 못하게 된다. 제가 맡은 분야의 중요성도 있지만 사람의 안전과 그들이 일상을 되찾는 일이 가장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허 연구원은 영남 산불 피해 현장을 조사하러 갔을 때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다만 생태계 복원 역시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식물도 배제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며 “숲을 되살리는 것도 미래 세대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고, 이 모든 게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올해 중 정밀조사를 마친 뒤 이해관계자들과 복원계획을 수립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생태 복원이라고 무조건 환경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며 “보호구역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학술적인 입장도 있고, 환경을 오롯이 지키고자 하는 환경보호론자도 있고, 정책 결정권자도 있고, 피해를 당한 주민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최종 복원 계획을 도출하는 게 학술논문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최근 책 <숲을 읽는 사람>(마음산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인간의 개발 활동으로 다치고 사라진 식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후변화에 앞서 인간이 식물을 죽이고 있다고 썼다. 백두대간의 서늘한 산꼭대기를 따라 분포한 가문비나무를 ‘대학살’하면서 스키장들이 들어섰다. 눈이 일찍 쌓이고 늦게 녹는다는 이유에서다. 멸종위기종 벌깨풀 자생지는 관광지 개발로 몽땅 훼손됐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한 석회암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가는대나물 군락지가 사라졌다. 도로를 뚫는다,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며 자생식물들을 뿌리 뽑았다.
그는 “자연적으로 기후 변화가 찾아오는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며 “기후 변화가 무섭다기보다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시점의 인간 개발 활동이 무섭다”고 했다. 기후변화는 식물의 서식지를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만든다면 인간의 개발 활동은 서식지를 깡그리 밀어버린다.
“스키장을 개발하지 말자거나 이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허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적어도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땅인 건 알고 이용해야 한다”며 “원래 살던 생명체들의 생존권을 인정해주고, 우리가 그 땅을 빌려 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스키장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그 수익을 나눠 그곳 생명체들의 서식지를 다시 보전할 수 있는 비용을 내야한다”며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 또 다른 피난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쉬는 날이면 일찍이 식물을 보러 떠나고 곧잘 식물에게 말을 걸 정도로 식물을 아끼는 그지만 얼마 전까지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엄두가 안 나서”라고 했다. 지난해 호야 화분을 선물 받으면서 그의 집에도 돌볼 생명이 생겼다. 그는 책에 ‘호야를 의자 위에 두었다’가 아니라 “호야를 의자에 앉혔다”는 표현을 썼다. 다른 이들은 쉽게 들이고 방치하는 생명의 무게가 그에겐 남다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알면 굳이 뭔가를 편애할 수가 없을 거라는, 공평하게 애정을 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저는 정원에서 제일 많이 느끼거든요. 찔레꽃 이야기를 알면 장미를 보호하겠다며 찔레꽃을 뽑아버릴 수 없어요. 누구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가 희생당하는 게 마음이 아파요. 이제는 모두가 똑같이 돌봄받는, 지구라는 정원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은 사라져가는 식물을 연구하고 다친 숲을 되살리는 데 힘쓴다.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긴 영남지역 동시다발 산불 피해지에도 이곳의 손길이 뻗쳤다. 복원실 복원지원팀장이자 영남 산불 피해지 조사팀 일원인 식물학자 허태임 연구원(39)을 13일 백두대간수목원에서 만났다.
허 연구원은 지난 3월 발생한 영남 산불 피해지 조사를 마치고 수목원으로 돌아왔다. 지난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과 모니터링에도 참여했다. 산불 피해지 복원 방법에 관해 묻자 그는 답했다. “어렵다. 아직은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가야 한다.”
유엔(UN)은 2021년부터 2030년까지 전 세계 생태계를 복원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생물다양성을 보전할 10개년 계획을 2019년 선언했다. 생태계 흐름을 파괴에서 복원으로 역전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이후 국내에서도 산림자원법 등 관련 제도가 정비됐다. 2022년 울진 산불 피해지 복원은 그 제도들이 적용되는 첫 복원 사례다.
산림청은 2023년 6월부터 울진 산불피해지 산림생태복원 사업을 추진했다. 일부 지역은 완전히 그대로 내버려두면서 자연 그대로의 회복을 기다린다. 어떤 곳은 스스로 돋아난 맹아를 보살피며 관리한다. 나머지는 직접 묘목을 옮겨다 심어 기른다. 허 연구원은 모니터링 2년 차인 지금엔 아직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단언하기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정답을 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다만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곳에 원래 살던 식물들의 유전자원으로 피해 지역을 되살리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허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결국 기준이 되는 건 기존에 있던 건강한 숲들”이라며 “현장 기반 과학이 중요하다는 걸 더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산불 전 그 지역 식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재난 이후 생태계를 복원할 때 참고할 원형이 없다는 의미다.
식물을 되살리는 일에는 인간의 시간보다 더 먼 미래를 상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허 연구원은 “여러 연구들이 산불 뒤 숲을 푸르게 만드는 데 짧으면 30년, 완전한 회복까지 길게는 100년까지 걸린다고 말한다”며 “복원은 100년 후를 내다봐야 하는데 그보다 짧게 사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예측할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오만 가지 변수가 존재하는 자연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면서 느끼는 건, 더 겸손해야겠구나 하는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희귀식물 피해를 조사하러 가는 길에서 불탄 인가나 죽은 강아지 사체, 전소된 차량 등을 본다. 차에 타고 있던 분들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러고 나면 현장에서는 식물을 이런 방식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잘 못하게 된다. 제가 맡은 분야의 중요성도 있지만 사람의 안전과 그들이 일상을 되찾는 일이 가장 먼저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허 연구원은 영남 산불 피해 현장을 조사하러 갔을 때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다만 생태계 복원 역시 ‘우리의 문제’라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식물도 배제되지 말아야 할 대상”이라며 “숲을 되살리는 것도 미래 세대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고, 이 모든 게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올해 중 정밀조사를 마친 뒤 이해관계자들과 복원계획을 수립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는 “생태 복원이라고 무조건 환경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며 “보호구역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학술적인 입장도 있고, 환경을 오롯이 지키고자 하는 환경보호론자도 있고, 정책 결정권자도 있고, 피해를 당한 주민들까지 다양한 사람이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한다”고 했다. 이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최종 복원 계획을 도출하는 게 학술논문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최근 책 <숲을 읽는 사람>(마음산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인간의 개발 활동으로 다치고 사라진 식물들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후변화에 앞서 인간이 식물을 죽이고 있다고 썼다. 백두대간의 서늘한 산꼭대기를 따라 분포한 가문비나무를 ‘대학살’하면서 스키장들이 들어섰다. 눈이 일찍 쌓이고 늦게 녹는다는 이유에서다. 멸종위기종 벌깨풀 자생지는 관광지 개발로 몽땅 훼손됐다. 시멘트를 만들기 위한 석회암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가는대나물 군락지가 사라졌다. 도로를 뚫는다, 화력발전소를 짓는다며 자생식물들을 뿌리 뽑았다.
그는 “자연적으로 기후 변화가 찾아오는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인간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며 “기후 변화가 무섭다기보다 기후변화가 진행되는 시점의 인간 개발 활동이 무섭다”고 했다. 기후변화는 식물의 서식지를 면에서 선으로, 선에서 점으로 만든다면 인간의 개발 활동은 서식지를 깡그리 밀어버린다.
“스키장을 개발하지 말자거나 이용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허 연구원은 말했다. 그는 “적어도 누군가의 희생을 딛고 선 땅인 건 알고 이용해야 한다”며 “원래 살던 생명체들의 생존권을 인정해주고, 우리가 그 땅을 빌려 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스키장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그 수익을 나눠 그곳 생명체들의 서식지를 다시 보전할 수 있는 비용을 내야한다”며 “대체 서식지를 만들어 또 다른 피난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쉬는 날이면 일찍이 식물을 보러 떠나고 곧잘 식물에게 말을 걸 정도로 식물을 아끼는 그지만 얼마 전까지 식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엄두가 안 나서”라고 했다. 지난해 호야 화분을 선물 받으면서 그의 집에도 돌볼 생명이 생겼다. 그는 책에 ‘호야를 의자 위에 두었다’가 아니라 “호야를 의자에 앉혔다”는 표현을 썼다. 다른 이들은 쉽게 들이고 방치하는 생명의 무게가 그에겐 남다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알면 굳이 뭔가를 편애할 수가 없을 거라는, 공평하게 애정을 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사실을 저는 정원에서 제일 많이 느끼거든요. 찔레꽃 이야기를 알면 장미를 보호하겠다며 찔레꽃을 뽑아버릴 수 없어요. 누구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가 희생당하는 게 마음이 아파요. 이제는 모두가 똑같이 돌봄받는, 지구라는 정원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